2022.10.25
국정보 교재 p.353 작은 글씨에 "이중섭이 지금 아내가 온다고 해서 기다리며 들뜬 상황의 한가운데에 있는 모습이므로 벌써 '괴리'를 느꼈을 리가 없습니다. 이중섭이 예언자가 아닌 이상 아내가 올지 안 올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선지 3번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이중섭이 아닌) 시인의 마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다르게 해설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p.362에 선지 5번에서 인간의 시선이 갖는 한계가 <보기>의 "대상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인식"라고 되어 있는데요.
제 생각에 <보기>의 내용은
-이 그림은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화가는 대상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서, 이러한 형태의 창작을 했다.
-감상자들은 이렇게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인데
5번 선지의 "바위인지 아닌지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시선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는 이 그림에 대한 감상자 입장의 얘기이므로, 이 그림이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를 말한 것이고, 화가의 발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뒷내용인 "ㄱ도 ~ 언어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서 나온 시적 발상이라고 생각해"는 <보기>의 그 부분과 연결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1. 이중섭 관련해서 해설을 바꿀 필요성이 없어 보입니다.
2. 그렇게 볼 여지도 있습니다. 다만 해설과 같이 큰 차원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표현과 관련하여 지적해 주신 다른 문장과 연결되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어쨌든 좀 미흡한 부분이 있으니 말씀을 해 주신 거니까 수정 방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만 위와 같이 큰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므로 수정된 방식을 즉시 게재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