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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물을 만나는 게 좋은데 불을 만났다' 라고 정리하셨다면,

시에서 말하는 '물'은 무엇이고 '불'은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 보실 차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아야 풀 수 있는 그런 수준의 풀이 말구요.

가령 뭐, 이 시를 썼을 무렵에 시인이 전쟁으로 자식을 잃었는데,  '물'은 '꿈속에서 만나는 시인의 자식'이고 '불'은 '전쟁'이라거나... (위 시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고, 내용도 안 맞지만 ^^;;) 이런 거 말구요.

그냥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그런 걸 파악해 보세요.

그리고 시 전문에 나오는 자연물에 주목해 보세요.

제가 위 시에 나온 자연물은 다 적어 볼게요.

 


(키 큰) 나무
비오는 소리
강물
(죽은) 나무뿌리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


(숲이 된) 뼈
불타는 것들

흐르는 물
(넓고 깨끗한) 하늘

위의 자연물(=자연물은 강, 바다, 산, 이런 것 말고도 시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을 말합니다. 싸잡아서 그냥 '명사'는 모조리 '자연물'로 보셔도...)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분류해 보세요.

그건 어떻게 분류하냐면, 저 시어들 바로 뒤에 나오는 '서술어'를 한번 읽어보세요.

 

물 :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좋은 느낌)

 

그 뒤로, 같은 물 과(科)인 '강물', '바다'도 좋은 느낌의 이미지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혼자 깊어 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신다' 는 것은

제 생각으로는 상처받은 영혼을 뭔가 위로하려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 상황을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보세요. 본인이 직접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 작업을 한다던가, 그림을 그린다던가, 시집에 들어갈 삽화를 그린다고 생각하고)

 

나무뿌리는 나무뿌리인데 그냥 나무뿌리가 아니라 죽은 나무뿌리이고,

긍정적 이미지인 '강물'에 그걸 ‘적신다‘고 했으니 죽은 나무뿌리를 살려주려는 걸까? 뭐 이런 느낌.

 

근데 너무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으시고, 그냥 대강 ‘긍정적인 느낌이구나~’ ‘긍정적 이미지의 ''이 '죽은 나무뿌리'를 '적셔주고' 있구나~’ 정도로 행위 자체를 파악하고만 있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3연부터,

'그러나' 라는 접속사와 함께 분위기가 바뀝니다.

언정보, 나쁜언어 등에서 항상 접속사 뒤의 내용을 주의하라고 하죠.

이건 외국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구요.

however, though 등 ㅎㅎ

 

'그러나',

뒤에 ''로 만나려 한다.

라고 했으니 ''과 상반되는 이미지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꼭 이렇게 시 내용에 의해 분석하지 않더라도...

'물'과 '불'은 상반된 이미지이며,

일반적으로 물이 좋은 이미지, 불이 나쁜 이미지를 갖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다들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반대의 이미지를 갖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가령, 지난 6월 모평에서 임철우의 '눈이 오면'이라는 소설에서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햇볕'이 부정적 이미지, '그늘'이 긍정적 이미지로 나왔죠.)

 

그런데 불로 ‘만나려 한다’는 서술어에서 시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어쩔 수 없이 불을 만난 게 아니라, 시인의 의지로 ‘불로 만나려 한다’는 것이죠.

이건 ‘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하지 않고 그에 직접 맞서려는 화자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벌써 ''이 된 ''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라는 자연물이 '숲'을 이룰 정도로 하나 가득이고,

그것들이 다른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답니다.

 

''도 원래는 '살'이었을 텐데,

불에 타 ''가 된 것일 텐데,

그것들이 또 다른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개인적으로 해석을 해 보면,

 

''은 뭔가 고통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담고 있고,

''는 그 '불'의 '흔적'을 말하는 것 같아요.

'고통의 잔해' '분노의 잔해' 이런 거요.

 

그런데 그런 애들이 또 다른 '상처 받은 것들', 즉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다는 건,

자신들의 분노와 고통을 더욱 큰 분노나 고통으로 번지도록 내버려 두거나(체념하거나),

혹은 다른 ‘불타는 것들’을 비웃거나 하지 않고,

자신들과 같이 또 다른 고통 받는 것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 같이 보여요.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멀리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저 ''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고통과 분노가 모두 지난 뒤에,

그런 것들 모두 버리고

'물'(긍적적 이미지)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 : 위의 해석과 같은 맥락이죠? 고통과 분노는 모두 버리고 만나자는...

분노와 고통의 ''은 ''로 모두 꺼뜨려 버리자는 거죠.

 

올 때는 '인적' 그친

인적 : 사람이 다닌 발자취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고통이나 분노 같은 사소하고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고 합니다.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이요.

혹시 ‘불’이라는 고통의 원인이 ‘인적’, 즉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정도로 긍정적 이미지, 부정적 이미지를 가르고

‘자연물’과 ‘서술어’에 주목해서 해석해 나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인강 같은 데에서도 ‘서술어’에 주목하라는 말은 많이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확 와닿진 않죠?

 

그러니까, 시에 나오는 ‘자연물(명사)’이 시 안에서 ‘어떤 행동(동사)’을 하는지

혹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어떻게 느끼는지)’하는지를 잘 보라는 얘기에요.

 

가령,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간간히/자유를 말하는데,/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시 구절에서

‘활자’는 ‘반짝거리고’,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다’고 합니다.

 

뒤의 구절을 더 읽어봐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반짝거리다’와 ‘자유’는 긍정적 이미지이고,

‘활자’와 반대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의 영’은 ‘죽어 있다’고 했으니, 시인은 자신의 영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하죠?

 

이런 느낌으로, 시도 비문학처럼 지문 분석에 시간을 좀 더 쏟아서

시에 등장하는 모든 ‘자연물’과 모든 ‘서술어’의 속뜻을 파헤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한번 분석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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